
나주 읍성길을 걷다 보면 어느 골목 끝에서 예고 없이 웅장한 성문과 마주하게 된다. 남고문(南顧門)이다. 현대적인 도심 풍경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이 거대한 축조물은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수백 년 전의 시간층으로 진입하게 하는 경계석 역할을 한다.
특정한 지역의 내력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향토사(鄕土史)는 단순히 옛이야기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땅에 새겨진 시간의 지층을 확인하고, 그 위에 선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지는 작업이다. 남고문 앞에 섰을 때 느끼는 묵직한 존재감은, 이곳이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나주읍성의 남쪽 관문이었던 남고문은 호남의 행정과 군사를 아우르던 중심지로 향하는 필수 통로였다. 장날이면 북적였을 상인들, 한양으로 과거길을 떠나던 선비들, 급박한 소식을 전하던 파발꾼들의 발길이 이 문루 아래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1910년대 일제강점기, 식민지 도시 개편이라는 명목 아래 성문은 강제 철거되었다. 지역의 얼굴이 사라진 자리는 오래도록 빈터로 남겨졌으나, 지역민들의 끈질긴 복원 염원이 모여 마침내 남고문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적 제337호로 지정된 남고문은 나주목 4대문 중 가장 먼저 복원된 사례로, 민관 협력 복원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단순히 건축물을 새로 세운 것이 아니라, 굴절되었던 지역의 역사를 바로잡고 잃어버렸던 향토적 자긍심을 회복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오늘날의 남고문은 팔작지붕을 얹은 당당한 2층 문루의 위용을 자랑한다. 낮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고, 해가 지고 나면 은은한 조명 아래 고즈넉한 야경을 선사한다. 이 성문 아래에는 아름다운 풍경만 깃든 것이 아니다. 1980년 5월의 기억 또한 이 공간의 역사 속에 묵묵히 녹아 있다.
남고문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단정한 기와 담장 너머로 남파고택(南坡古宅)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집은 조선 후기 나주 양반가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바람이 마루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 처마 끝에서 빛이 꺾이는 각도, 200년 넘게 대를 이어 전해진 종가의 내림 음식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 온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차분함이 집 전체에 배어 있다.
나주는 성문 아래의 바람과 고택 마루 위의 고요함이 한 골목 안에 공존하는 도시다. 남고문이 지역 공동체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경계라면, 남파고택은 그 역사 안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의 체온을 전하는 공간이다. 나주가 품어온 것들은 박물관의 유리 너머에 있지 않다. 골목을 걷고, 마루에 앉고, 처마 밑에서 바람을 맞는 사람만이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향토사는 거대 담론의 역사보다 세밀하고 다정하게 우리 삶을 지탱한다. 나주 읍성의 골목은 오늘도 그 장면들을 조용히 간직한 채, 느린 걸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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