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화루 전경. 사진=우미옥

나주 금성관(錦城館)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망화루(望華樓)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지방선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시점에 망화루 앞에 서서 생각한다. 이 낡고 오래된 문루가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지를.

망화루라는 이름에서 ‘화(華)’는 단순히 ‘화려하다’는 뜻이 아니다. 유교 정치 사상에서 ‘왕화(王化)’란, 임금이 억지로 명령을 내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어진 덕과 올바른 행실이 물이 스미듯 자연스럽게 백성의 마음속으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지도자가 먼저 바른 사람이 되면, 백성도 저절로 바르게 따라온다”는 생각이다. 즉, 이 누각의 이름은 처음부터 “덕 있는 지도자를 바라보고 그것을 본받으며 나아가는 공간”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조선 성종 연간(1469~1494년), 나주목사 이유인이 금성관과 함께 망화루를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 관리들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정청에 모셔 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한양의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하였다. 망궐례란 멀리 있어 직접 왕을 뵐 수 없을 때, 궁궐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공손히 절을 올리던 의식이다. 전패와 궐패는 왕과 궁궐을 직접 대신하는 상징물로, 관리들은 이를 앞에 두고 마치 왕 앞에 있는 것처럼 예를 갖추었다. 망화루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는 일은 곧 한양을 향해 몸을 낮추는 행위의 연장이었다. 그 시절 이 누각이 바라본 것은 오직 한 방향, 임금이 계신 곳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누각에서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가.

역사가 먼저 답을 바꿨다

역사는 이 공간의 쓰임새를 스스로 변화시켜 왔다.

임진왜란(1592년) 때 의병장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출병식을 열었다. 의병이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일어선 백성들의 군대다. 또한 1895년 을미사변, 즉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때는 명성황후의 빈소를 이곳 금성관에 마련하여 항일 정신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왕에 대한 의례의 공간이, 어느 순간 백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걸고 공동체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망화루의 가장 빛나는 역사는 위를 향한 충성이 아니라, 아래를 향한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망화루는 금성관의 동·서익헌과 함께 헐려 없어졌고 원형을 잃었다. 동·서익헌이란 금성관 본채의 동쪽과 서쪽에 붙어 있던 부속 건물로, 관리들이 머물거나 업무를 보던 공간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2001년부터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2005년까지 망화루 동·서익헌 순차적으로 복원되었다. 억압과 파괴를 견디고 다시 세워진 이 문루는 이미 단순한 왕조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나주 시민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로 되살린 공간이다.

문루의 시선을 돌릴 때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않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저마다 지역을 위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망화루가 바라봐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의 망화루가 바라봐야 할 첫 번째 방향은 나주 시민의 삶 그 자체다. 

혁신도시 빛가람동이 성장하는 동안, 원도심과 읍·면 지역은 조용히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언제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망화루는 그 소외된 곳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진정한 지역의 지도자란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아니라,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먼저 눈길을 주는 사람이다.

두 번째 방향은 지역 정체성의 회복이다. 1018년 고려 현종이 나주와 전주의 첫 글자를 따 ‘전라도(全羅道)’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전라도’라는 이름 안에 나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땅이 품은 역사의 무게는 단순한 관광 콘텐츠가 아니다. 나주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나주가 앞으로 어떤 공동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토대다. 선거 공약 하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 온 정체성 위에서만 진짜 발전이 가능하다.

세 번째 방향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자유민주공화국이란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니라 국민임을 뜻한다. 세계 곳곳의 전쟁을 보면, 그 뿌리에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후퇴와 권력의 독점이 있었다. 망궐례는 멀리 있는 임금을 향한 복종의 의례였다. 그러나 오늘날 주권, 즉 나라를 이끌어 가는 힘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시민에게서 나온다. 망화루는 이제 ‘왕의 덕을 우러러보는 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자유민주공화국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다짐의 문’으로 읽혀야 한다. 의병들이 이 마당에서 출병식을 올렸을 때, 그들은 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웃과 마을과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떠났다. 그 정신이야말로 오늘 이 문루에 새겨야 할 진짜 이름이다. 

문루는 통과하는 것이다

문루란 성문이나 건물의 정문 위에 지은 누각으로, 사람들이 그 아래를 지나다니는 구조물이다. 문루의 본질은 그것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통과하느냐에 있다. 조선 시대에는 관리와 사신만 드나들던 이 문을 이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이 천천히 걸으며,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웃으며 지난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이고, 가장 올바른 변화다.

나주시장은 금성관 해체 수리가 단순한 복원 작업을 넘어 나주 천 년의 역사와 정신을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싶다. 왕을 향한 복종의 정신인가, 아니면 외침 앞에서 스스로 일어선 민중의 정신인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미래를 논하는 이 시기에, 그 질문은 더욱 무겁게 울린다.

망화루가 바라봐야 할 것은 멀리 있는 권력이 아니라, 바로 이 풍경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역을 지킨다는 것,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전쟁도 선거도, 그 끝에 지켜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