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한 청년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무거운 가방을 멘 채 깊이 숙인 고개, 축 처진 어깨, 그리고 어딘가 공허한 눈빛.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그 청년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우리 아이들의 진짜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팍팍하다. 취업 준비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려 있다. 집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발걸음만으로도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거운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앉는 모습들을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우리 아이들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

어릴 때부터 공부를 친구처럼 여겼던 아들이 떠오른다. 공부를 좋아한 덕분에 의사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분야인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을 매일 마주해야 했고, 밤낮없는 응급 상황에 시달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 부담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K-바이오 회사에서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치료하던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다행스럽다. 원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딸은 간호사로 환자들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일했다. 그러다 더 위급한 현장으로 나가겠다 했을 때, 사람들은 딸의 선택을 대견하게 여겼지만 부모 마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소방공무원이 되어 119구급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간호사 시절의 경험이 응급 상황에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살아난 환자의 눈빛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그저 ‘생명’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딸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두 아이 모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 짐인지 부모로서 잘 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이제는 더 알 것 같다.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왜 그래?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라고 묻던 예전의 나 대신, “많이 힘들었구나”라며 먼저 안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말보다 따뜻한 포옹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과만을 재촉하던 나를 되돌아본다. 이제는 과정을 인정해주려 한다. 남과 비교하는 대신 아이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주려 한다. 요즘은 남을 위해 일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지친 모습 뒤에 숨어 있는 강인함도 본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력,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용기를 본다.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값진 배움은 실패에서 나온다. 그 실패 하나하나가 아이들을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만들 것이다.

사람마다 시간표는 다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진짜 시작일 수도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빛날 수는 없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깨 쭉 펴고 고개 들어. 너희는 소중한 사람이란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