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가고 있다. 사진=우미옥
사진=우미옥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결이 가을의 전령사처럼 우리 곁을 스쳐간다. 시골길을 달리는 차창 너머로 펼쳐진 들녘에서는 벼들이 조금씩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전해주고 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을 견뎌낸 자연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제 몫의 열매를 품고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발길은 자연스레 감나무 밭으로 향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서툰 손길로나마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며 병충해와 씨름했던 시간들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었을까 하는 설렘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광경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감나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은 제법 대봉감다운 풍성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단감들 중에는 이미 노랗게 익어 가을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는 것들도 있었다.

나는 그 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감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을까.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봄비를 맞으며 새싹을 틔우고,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도 묵묵히 자라온 그 시간들 말이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다. 어떤 조급함도 없이 제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상을 돌려준다. 땀 흘린 만큼, 정성을 쏟은 만큼, 기다린 만큼의 결실을 안겨준다.

오늘 나는 익어가는 감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나 또한 감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익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마음, 시간과 함께 더욱 단단해진 내면, 경험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나는 지혜가 바로 내가 맺어가고 있는 삶의 열매가 아닐까.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감나무 아래 서서 바라본 하늘은 높고 푸르다. 자연과 함께 익어가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감이 익어가듯이, 나도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