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아 나주시니어클럽 보육시설지원사업단
바쁘게 가버린 남편
“어이, 공채 5급 합격했네.” 목동이 양 떼를 몰고 오듯 반세기 훨씬 전에 남편은 말했었다.
“예, 말이요, 고마워요.” 하며 코끝이 시큰둥 코맹맹이 소리를 섞었다. 그가 건실하고 묵묵한 내무공무원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을이면 갈대를 꺾어 들고, 6월이면 패랭이꽃 한 아름 안겨 주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4년 전 당뇨로 콩팥 장애가 발생하고 신장투석을 일주일 3번 번갈아 3시간 동안 참아야 했으며, 시력이 점점 약해져 가고, 언어 장애도 오고 전두엽에 이상이 생겼으며 알츠하이머, 나아가 신체 마비로 꼼짝없이 침상 위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남편도 나도 그땐 꿈에도 몰랐었다.
분명 누군가 요양병원을 권했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내 나이 75세였지만 나는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편을 직접 보살피기로 했다. 미운 정 고운 정 탓만은 아니었다. 그저 내 낭군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탯줄이 묻힌 나주 땅을 떠나보지 못하고, 평생 나주사람으로 여든을 넘기지 못한 채 작년 가장 덥던 8월 어느 날, 남편은 말 한마디 더 보태지 못한 채 숨을 쉬지 않았다.
26여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께서 옛 우리 집 정원 가장자리에 50그루나 심어 놓은 모란꽃 옆에 그의 탯줄을 묻어 놓았단 얘기를 들려주었었다. 남편은 그 탯줄 자리 때문에 나주를 떠나지 못했던 걸까. 남편은 나주에서, 나는 서울에서 3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우리 부부는 주말 부부, 월말 부부, 6개월 부부에서 어느 해엔 명절에나 겨우 만나는 부부로 점점 간격이 벌어져 갔다. 그래도 남편이 있던 우리 집엔 연분홍다홍색으로 겹겹이 채운 춘 동백꽃이며, 목단꽃이며, 살구꽃이 열매를 맺듯 우리의 삶도 이어지고 맺어져 갔다.
56년 전 첫 만남에서 코를 휭 풀어 전봇대에 쓱 문지르던 남편을 보았더랬다. 대전과 나주를 오가며 연애 1개월 동안 남편은 코를 계속 전봇대에 쓱쓱 문질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놓았으며 서울과 나주로 떨어져 살아왔지만, 남편은 끝내 나주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남편은 바쁘게 갔다.
충동 아닌 자유, 그리고 파리행
송월동 아파트 18층에 나 홀로 놔두고 남편은 배신자처럼 가버렸다. 멍한 마음이 돌연 18층에서 뛰어내리고픈 마음으로 바뀌더니 거실 창으로 보이는 달빛 밝은 밤이 나를 ‘어서’라며 충동질하고 있었다. ‘열정이 없어도 결단은 어렵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나는 자유를 느꼈다. 3년간 침상에 누워만 있던 남편 탓에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내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 뛰어내리고픈 것은 충동이 아니라 자유라고 믿었다. 오직 모든 무거운 생각의 짐을 다 털어내고, 아무 생각 없는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정신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그후로 오랫동안 방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실은 내 몸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남편을 돌보는 동안 척추협착증이 심해져 시술을 했고, 10분을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무릎도 망가져 있었다. 10여 년 전 위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몸은 더욱 허약해져 갔다. 내가 자유가 필요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여행을 제안했다. “엄마, 프랑스 파리나 갔다 오게요.” 그저 마음속으로만 가고팠던 ‘파리’라는 말을 듣자 힘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좀체 걸을 수도 없는 몸이라 고사했다. 아들은 휠체어를 싣고 가면 된다며 파리행을 서둘렀다.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 파리행. 아들은 휠체어를 밀고 또 밀어야 했지만 즐거워 보였다.
어미인 나 또한 미안했지만 즐거움을 감출 순 없었다. 세느강 강가며, 루브르 박물관이며, 오르세 미술관을 휠체어에 앉아 휘젓고 다녔다. 파리 시내에 휠체어를 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 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휠체어에 앉은 나를 깍듯이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화 대국다웠다. 고흐의 그림이며 모네의 수련에 보이는 빛의 떨림, 개선문,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과 성당 등 모든 것들이 장려하고 웅장하고 찬란했다. 내 마음의 짐이 순식간에 쓸려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에게 고마웠다. 프랑스 시인 G. 아폴기 네르는 이렇게 써 내려간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 사랑은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 옴을. 밤이여 오라. 종소리야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우리의 사랑은 오지 않은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희망은 역동적.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그리고 유유히 흘러내린다.’
늙은 나도 이 시가 아름답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파리를 세느강을 직접 겪은 나는 온몸이 나이에 상관없이 엿가락처럼 흘러내림을 느꼈다. 삶의 의지가 되살아났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은 없었다.
나주 시니어 클럽과의 인연
그래 죽음을 막을 순 없다. 이젠 누군가에게 눈빛으로부터 인정받고 길고 짧은 추억이 삶 속에서 더욱 많이 생기도록 해야겠다고 고쳐 생각한다. 어딘가 무엇이든 남은 삶에 최선을 다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으니 이 길도 이젠 즐겁다. 생각을 고쳐먹으니 몸도 반응해 준다. 솔직히 고통스럽지만 참아내고 이겨내리라.
송월동 동사무소에 들렸던 어느 날, 동사무소 직원의 소개로 나주 시니어 클럽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노인이지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고 용돈도 벌 수 있는 많은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순간순간 감사하며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살아가자고 마음먹던 차에 듣게 된 나주 시니어 클럽의 활동 내용에 귀가 솔깃했다. ‘무엇이든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시니어 클럽의 모든 사업에 대한 모집이 끝난 상태라고 했다. 나를 기다려 주는 사업이 없어도, 채용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다. 일할 의욕과 비록 아프더라도 멀쩡한 사지가 있다면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내 의지를 피력해두려고 노안 나주 시니어클럽에 직접 찾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가 비어 티오가 있다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 나주 시니어 클럽 담당자님! 18층에서 떨어질 뻔한 나를 구원해 준 구원자이자 생명수! 나주 시니어의 일자리와 보육 시설의 연계성, 풍부한 경험과 지혜,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해 드린다고 입버릇처럼 큰소리로 외쳐준 나주 시니어 클럽 담당자님은 부드럽고 힘찬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셨다.
노인 일자리의 내 첫 작업장
2024년 6월 16일 초여름날 집에서 내 발걸음으로 1시간 30분 거리, 보통 사람들이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가까운 거리지만 나는 보조기구를 사용해서 쉬엄쉬엄 걸어가기 시작했다. 택시나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걷기로 했다. 그동안 아프다고 체념상태로 걷지 않았던 나는 내 몸을 마구마구 부리기로 했다.
첫날 처음으로 오랜 세월 구겨진 옷을 잘 펴서 입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앞뒤로 살피며 얕은 화장을 하고 앞으로 내 몸을 어떻게 지탱해서 움직일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육 시설로 들어섰다. 연습한 대로 웃어 보였다.
다행히 내가 일할 보육원의 식당 조리사 선생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런데 조리사 선생님의 미소는 지금껏 보지 못한 묘한 미소였다. 3시간 근무 동안 허약해 보이는 내가 설거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 누구도 상관치 않고 무상무념으로 일에 빠져들고 싶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기왕 하는 바에 깨끗이 우리 어린아이들이 먹을 양식의 식판이나 그릇을 닦아 내고 싶었다. 조리실은 너무나 반짝반짝 빛나 있었다.
나는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했다. 단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흥건히 젖어 들었다. 닦고 또 닦았다. 얕은 화장이 다 지워질 때쯤 조리사 선생님이 하얀 손수건을 내밀며 땀을 닦아 주신다. 나는 싫은 내색 없이 다른 볼을 내밀었다. 쉬운 일이란 없다. 남의 일이 쉬어 보일 뿐이다. 자기 맡은 바 일을 기쁘게 달갑게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노인들은 작업에 임하여 마음의 병을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조리사님은 너무나 친절하셨다. “이모님, 힘들어서 어떡해요.”노인이어서 허약해서 힘들어 보였겠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옥빛나게 닦고 또 닦아야 마음이 시원하다며 되려 조리사 선생님을 위로했다. 그후 6개월 동안 수고했고 또 만날 수 있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첫 작업장과 이별했다. 내 전 인생 동안 이렇듯 많은 시간의 설거지는 처음이었고, 그 많은 땀과 함께 나는 나만의 설거지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올해 초 나주 시니어클럽 담당자이신 장은화 선생님의 주선으로 다문화 가족 자녀가 많은 어린이집으로 새로이 출근하게 되었다.
2025년 1월 16일, 두 번째 일터
다문화 가족 자녀 등 유아 교육과 노인 일자리를 연계하는 것은 최근 늘어가는 한국에 유입된 여러 나라 자녀들과 모두가 함께 하는 사회 구현 및 저출산 고령 사회에 대응하며,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 환경 조성이라는 국정과제의 실행 일환으로 마련된 일종의 노인 일자리 신상품이었다.
내게는 처음에 ‘유아 언어 발달 촉진 사업’으로 안내되었다. 내가 선발되고 참여자와 수요처 연령별 언어 발달 촉진 지원 방법, 영상 자료 단계별 세부 추진 사항, 수요 파악 등을 완료하며 신사업 적정 사업량 확보를 위해 나주시와 협의 하는 등 시니어 클럽은 착착 일 준비를 했다. 이 일을 설명하는 일조차 내겐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나는 나주 시니어 클럽만이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기로 했다.
설거지만큼 정말 행복한 일자리로 보였다. 일자리로만 따지면 ‘하늘에 뜬 별’과 같다는 생각이다. 별같이 해맑은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는 일이니까. 그만큼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니까. 아, 지금 내가 이 어린 아가들과 희망하는 별을 따고 있구나. 나는 행복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충실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 내 피붙이 손자들만큼 아이들에게 더욱 잘 대해주자.
유아 교육은 우리 시니어 늙은이들에겐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다. 할머니의 자애로움으로 내 눈과 허리는 더욱 꼿꼿하게 아이들 앞에 서 있다.이 영롱한 아가들 앞에서 저 넓은 세상의 작은 통로가 되어 줄 것이다.
“아유, 참 고우시네요.” 3세 해누리 반에 똑똑 문을 노크하며 들어서니 보육 교사님 두 분과 아가들 8명이 나를 맞는다. 한국과 베트남 부부의 자녀들이 많다. 한국 아기는 한 명뿐이다.
“할머니, 할머니” 똑똑한 발음과 억양이 3살 답지 않아 쳐다보니 아주 인형처럼 예쁜 한국 베트남 아빠 엄마를 둔 아가가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나는 아이의 구강을 살피고 귓속, 손과 발, 머리 등을 보며 아이가 조금 취약함을 느꼈다. 그때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무서워하는 아기, 비행기를 보려는 아이, 키가 닿지 않으므로 블록 위로 발을 딛고 올라서려는 아기, 눈물을 똑똑 흘리며 울어대는 아기, 휴… 참 다양하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아기는 타국의 외로움을 느끼며 엄마 아빠가 그리운 것이다. 울고 있는 아가는 감성의 울림이 짙고 풍부했고 나는 아가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아기는 너무나 포근히 안겨준다.
또래 중 가장 어린 12월생 아가는 또래 아이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늘 힘 쎈 아기들에게 꼼짝 못 하면서도 어울리고픈 야무진 아이다. 결국, 힘에 부쳐 울음을 터뜨리지만 금방울음을 멈춘다. 지난 5개월 동안 말이 느리고, 말을 터뜨리지 못한 아가를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역시 두뇌 문제와 다문화 장벽 때문에 그 아기들은 교육을 따라오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림책 속의 역할 놀이, 상장 놀이 등 매일 관찰 및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느리고 관심 밖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밖으로 나오곤 한다. 나와서 이름을 불러주고, 하늘에 날아다니는 나비도 잡아보게 하고, 참새에게도 안녕 인사를 시키고,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관찰하게 하며 놀게 한다. 언어 장애가 있는 아가는 별도 치료를 하기도 하고, 넓은 공간의 울림을 여러 아가들도 느끼도록 소리를 크게 지르고, 질서를 갖도록 미끄럼틀도 서로 도와 타게 하며, 서로 밀어주고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아도 보게 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부르면 곧장 울곤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엄마보다 더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하반기 6월 1일 나는 5-7세 아이반인 온누리 반으로 발령받았다. 15명 중 한국 아이가 4명이고 11명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유아였다. 언어 장애가 있는 한국 아이가 2명 포함되어 있다. 되려 외국 유아의 상태가 더 났다. 유아들의 학습지는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지도하여야 한다. 집중하게 하려면 많은 칭찬과 어루만짐이 필요하다.
갑자기 한 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선생님, 할머니다.” 옆에 있던 보육 선생님이 즉시 “여기는 할머니가 안 계십니다. 모두 선생님이에요. 알겠어요?” 그러자 풀죽은 아이가 나를 보며 “네” 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흘깃 쳐다본다. 나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언제나 큰소리를 내어 말하고 웃을 때는 하하호호 크게 웃게 하고, 자기 이름도 불러보게 하고 “뭐든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해누리 3세 반 아가들과 달리 5세 온누리 반 아이들은 속이 그만큼 트여 보살피기 수월하다. 내심 ‘이곳이 내 자리구나, 고마운 자리구나.’ 생각한다. 힘이 없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힘이솟는 걸 보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이제는 완전히 목동이 되었음을 느낀다.
귀하디 귀한 이 순간들
오늘도 144명의 노인 일자리 교육이 있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신 모습들이 보인다. 참여자 대상으로 노인을 위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 먹을거리 등 참여할 때마다 선물을 주시니, 기가 살아나고 좋다. 1년에 5회 직무 교육을 받는다. 모니터링과 관련된 내용, 근무 장소 모습,문제 발생 인식 개선, 근무 중 이어폰 착용 금지, 출석부 작성 시 화이트 사용 금지 등 사소한 것까지 교육이 이어진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 정신적 안정감 제공 등등 끝도 없는 교육에 한쪽에선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한쪽에선 졸리어 잠자느라 고개를 끄덕인다.
교육을 받으며 이 목동은 갈증에 물을 찾는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과 진정성을 전달하겠다고 다짐한다. 발달 장애와 언어 장애를 선별 검사하며 말이 늦고 말이 느리고 말이 트이지 않는 장애 유아는 기본 소양 교육과 언어 발달 촉진 지원이 앞으로 더 많이 활성화되고 수행기관 담당자와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한다.
“선생님, 바나나 먹어요.” 말이 서툰 아이가 세 단어로 된 문장을 붙여 말한다. 한편으론 ‘그래도 말을 잘했구나’ 반가워하면서도 즉시, “선생님, 바나나 잡수세요.”라고 바로 고쳐 말해준다. ‘제 엄마가 아기 먹으라고 주었을텐데…’ 참 대견하고 신기한 아이다. 놀 땐 놀고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인재가 되어 나라의 어엿한 기둥이 되길 바라게 된다.
태국 유아는 “이것은 훌륭한 의사가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할 거예요.” “싶어요.” 같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나 자신의 의지를 상황에 맞게 말하는 것은 어려운 표현이다. 다만 자신의 손을 가슴에 대고 자신을 ‘이것’이라고 하니, “나는 훌륭한 의사가 될 거예요.”라고 고쳐 말하게 한다.
잘 따라 말하는 걸 보고 대견하다. 아이는 언제나 날 반겨주고 나도 아이를 계속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선생님은 나이가 어려요.” ‘늙다’이라는 뜻을 아이가 알 리 없다. 아직 뜻을 가르쳐주진 않았다. 솔직히 듣기 좋아서다. 아이가 계속 “선생님, 모자 쓰니까 예뻐요.” 표현을 바꿔가며 한 문장씩 상황을 묘사한다. 아이에게는 미소와 함께 선물로 ‘모범생’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 노인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귀하디 귀한 이 순간들과 함께 나주 시니어 클럽 담당자님들 그리고 장은화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천사 같은 아이들의 목동이 되어 뛰어다닐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싶다. 새벽이면 일어나 저 멀리 나주역 기차 기적 소리와 요즘 개구리 합창단의 ‘개골’ 대는 소리를 듣고 창밖의 붉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어서 빨리 아이들을 보러 가고 싶다.
노인 일자리가 내게 준 삶의 원동력이다. 나는 행복하다. 나주 시니어 클럽이여!
* 이 글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주최 ‘2025노인일자리 참여자 수기공모’ 입선작입니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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