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여름 햇살이 온몸에 내려앉는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 숨 쉴 때마다 목구멍으로 파고드는 후끈한 공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길이 등줄기와 이마에서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로 온몸을 적셔 놓았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땀을 씻어줄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간절하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버스 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냉기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감사로 바꾸어 놓았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평소에는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대중교통이 이토록 고마운 존재였다니. 마음 한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초록빛 가로수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언제부터인가 그냥 지나쳐 버렸던 풍경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앙상했던 가지에 초록의 새싹이 돋았을 때 그 연초록의 빛깔에 얼마나 감탄해했었던가.

시간과 함께 흘러오면서 저 나무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때에 맞춰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날엔 바라보기만 해도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녹색의 평안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있었다. 변화는 계절의 모든 순간들도 창조주의 은혜이고 축복이었음을 다시 알아가는 이 순간이 감사하다.

문득 깨달았다. 내 주변에는 이렇게 고마운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어떤가. 당연히 뜨는 줄만 알았던 그 빛이 실은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밤하늘의 별들,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는 것, 바람이 불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마음으로 감정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따뜻한 포옹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친구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고, 가족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생각해보니 어느 때부터 이런 순간들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며 감사인데 말이다.

또한 모든 평범한 순간들의 변화들을 이렇게 직접 볼 수 있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나 자신도 너무나 특별한 선물을 받은 존재임도 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다 감사였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웃의 인사, 버스 기사님의 안전운전, 신호등이 지켜주는 질서, 휴대폰 너머로 전해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순간들임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려 한다.

그 여름날, 버스 안에서 문득 깨달은 이 작은 진리가 이제는 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되었다. 매 순간이 선물이고, 매 호흡이 축복이며, 매 만남이 은혜라는 것을.

감사는 우리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아주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