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남편과 함께 부지런히 마무리한 농사일 덕분에 여수 가족 모임에 여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남편이 직접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해둔 추억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 시댁 가족들의 특별한 가족애는 동네에서도 유명하다. 벌써 올해만 해도 세 번째 모임이다. 3월, 큰집의 묘지 이장 작업 때 고생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여야 한다며 여수에서 시장을 보고 단숨에 달려온 고모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5월 조카 아들 결혼식에서는 모두 모여 하룻밤을 보내며 함께 웃고 떠들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번 모임은 시댁 고모가 직장을 퇴직하며 우수사원으로 받은 격려금으로 가족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누군가의 작은 정성과 희생이 나머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는 이 아름다운 순환 속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따뜻한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수로 향하는 길에서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40년 전 첫인사를 갔던 그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는 시댁 식구들의 따뜻한 미소와 포근한 품이 있었기에, 낯선 곳에서도 금세 마음을 잡고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여수의 변화된 모습을 보니 우리 결혼생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예전엔 버스로 힘들게 다녔던 길이 이제는 편안한 자동차 여행이 되었고, 멀미로 파김치가 되곤 했던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가로수들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할 만큼 잘 자라 있는 모습을 보며, 마치 제주도 같은 이국적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여유로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우리들의 관계도 그 나무들처럼 더욱 깊고 단단해졌음을 실감한다.

각자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음식들로 우리 가족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몇 대가 함께하는 모임에서 손녀들의 재롱을 바라보며, 40년 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질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또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지겠지요. 이렇게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니까요.

오늘 같은 가족 모임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행복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만남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사회적 신뢰와 연대감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에서 시작된 작은 사랑이 학교로, 직장으로, 지역사회로 확산되어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이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큰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여수에서 느낀 이 따뜻한 마음이 내일의 희망이 되고, 한 가정의 행복이 온 사회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사랑으로 시작된 이 작은 변화의 물결이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며, 모든 이웃이 가족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 같은 나날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면서,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