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기자단이 8월 25일 편집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정성균 (나주시니어클럽 홍보사업단)

작년 겨울, 한 해를 마무리하던 12월의 어느 날. 우연히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을 살피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안내문 하나를 발견했다.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모집’이라는 문구 아래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중 ‘시니어홍보사업단’이라는 낯설고도 특별한 이름이 나를 멈춰서게 만들었다.

‘시니어들이 홍보를 한다고?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처음에는 그저 시니어들이 공동사업장에서 만든 물품을 알리고 판매를 도와주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알아보니 뜻밖에도 시니어들이 ‘기자’가 되어 지역 소식을 직접 취재하고 보도하는 일이라는 사실에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단순한 서포터즈 활동이 아니라 진짜 언론활동이었다.

나에게 이 일자리는 단순한 ‘일’ 그 이상이었다. 십여년 동안 언론사 기자로 살아오며 내가 익힌 경험과 기술을 다시 꺼낼 수 있는, 마치 봉인해 두었던 열정을 다시 불러낼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날 바로 지원서를 접수하러 갔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들은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아직 한 분도 지원 안 하셨어요.” 이 사업이 올해 처음 시행되는 사업이었고,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보니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노인일자리사업’이라고 하면 대개 환경미화, 교통 안내, 활동 도우미 등의 단순한 일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물론 그러한 일들도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노인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정부도 노인일자리의 방향을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 시니어들이 평생 갈고 닦아온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시니어홍보사업단.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시니어클럽이 이 같은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단순한 행정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니어 인식 변화와 미래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처럼 이 사업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한 시니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총 14명이 지원했고, 온·오프라인을 병행한 6일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0명이 선발되었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올 초부터 벌써 6개월째 시니어홍보사업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보사업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기자 경험이 없는 분들이었다. 열정은 있었지만, 취재 기법도 생소하고 기사 작성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현장 취재에 필요한 보도사진 촬영도 어려워했다. 처음 펜을 든 손이 떨렸다는 분도 계셨다.

나 역시 그랬다. 10여년의 취재 경험에도 불구하고 막상 편집장에게 최종 원고를 보내고 나면 지금도 여전히 긴장감이 밀려온다.

단원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단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매주 초 취재기획회의를 주재하고, 취재방향을 함께 고민했으며, 생생한 취재경험을 공유하고 실습과 현장 취재를 함께했다.

단원들의 소중한 땀이 배인 기사가 최종 발행되면 단원들과 함께 기뻐하며 기사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도 진행했다. 냉정한 평가에 서운해하는 단원들도 있었지만, 보다 수준 높은 기사 작성을 위한 채찍이라 여기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단원들의 자세에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단장의 역할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분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어 마을 축제에 카메라를 들이미고, 주민을 인터뷰하고, 밤늦게까지 기사를 다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도 함께 뛰었다.

지금까지 단원들이 시니어신문에 써낸 기사 수는 300편이 넘는다. 그중에는 지역 행사와 소식을 비롯해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생활 밀착형 기사와 생활정보성 기사도 있으며,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는 ‘나를 위한 글쓰기’도 있다. 이렇게 시니어신문은 우리 단원들의 목소리로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배움의 자세를 놓지 않았다. 최근 사회 전반에서의 뜨거운 화두인 ‘인공지능(AI)’ 기술은 시니어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낯설고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니어홍보사업단은 시대 흐름에 발맞춰 AI를 활용한 기사 작성법, 콘텐츠 기획 등에 대한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자료조사, 문장 첨삭, 기사 구조 구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능률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다. AI는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기술이 아니다. 우리 시니어들도 충분히 배워 익히고 활용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인생의 지혜와 경험이 더해져 더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특히 AI를 통해 기사 제목을 다듬어 보거나, 기사에 인용할 만한 표현을 고민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제 나는 다시 기자가 되었다. 펜과 카메라를 든 내 손은 여전히 생생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는 더욱 섬세해졌으며, 나의 문장은 다시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히 나에게 한 달 얼마간의 활동비를 주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다시 사회와 연결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새로운 출발선이었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노인의 역할은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주체자’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 길에 ‘시니어홍보사업단’은 강력한 증거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내게 지금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쁘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지금, 기자입니다. 시니어기자입니다” 라고.

* 이 글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주최 ‘2025노인일자리 참여자 수기공모입선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