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무이한 내륙 등대, 강변 등대인 영산포등대는 나주 영산동에 건장하게 서있다. 사진=이진문
근대에 들어 활황기의 영산포포구 모습. 한켠에 고즈넉히 등대는 의연하다. 사진=이진문
영산포등대 안에는 커다란 백열전구가 앙증맞게 들어앉아 밤을 밝힌다. 사진=이진문

영산포는 없다. 흑산도 옆 ‘영산도’, ‘내륙에 영산’, ‘내영산’, ‘냉산’을 거쳐 영산포읍으로 존재하던 지역이 1995년 도농복합시를 도입하고, 동 지역으로 통합되면서 행정상의 공식적인 지명 명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아직도 영산포가 살아 움직인다. 없어진 지명(地名)인데 이창동이나 영산동, 영강동의 상점마다에는 상호 옆 ‘榮山浦영산포’가 자랑차게 가슴에 찬 이름표처럼 의연하기도 하다. 살아난 영산포, 영산포는 있다, 아직도.

그 영산포를 끼고 있는 영산강. 담양 병풍산 용흥사계곡에서 발원하는 영산강은 한국 4대강 중 하나이다. 여러 지류를 합한 큰 물줄기는 목포까지 138.75km를 달린다. 강 근처 광주천을 낀 광주광역시가 있지만, 본류인 영산강을 끼고 도시를 형성한 곳은 영산포가 유일하다. 고려시대 조운, 조창으로 출발해 조선시대 세곡선이 성황을 이루던 곳, 일제의 약탈 전초기지, 홍어 집산지. 많은 역사의 굴곡을 겪었다. 영암 이하 남부의 물자와 산업이 모두 영산포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한때는 나주원도심보다 훨씬 융성하던 곳이었다.

그 영산강, 그 영산포 강가에 나루터인 포구가 있다. 포구에는 생각보다 크게 꼭두선 등대, ‘영산포등대’가 있다. ‘영산포등대’가 공식명칭이다. 바닷가 등대 포함 국내 12개 등대 중, 유일무이한 강변 등대이다. 바닷가 외진 곳이나 외딴 섬에서나 볼 법한 등대가 아니라, 바다로부터 육지 쪽으로 한참 45km 들어온 내륙 등대이다.

등대란 항로표지의 한 방법이다. ‘탑 모양의 구조물’을 하고 있어야 등대이다. 영산포를 품고 있는 영산강이 예전에는 거의 바다 수준이었으니, 내륙 등대의 역할도 소중하고 컸을 것이다. 등대 건너편으로 서서북쪽에 안창동이 있는데, 향토사가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 함대가 안창동까지 들어와 머물렀다 하니, 그 시절의 영산강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강변의, 내륙 등대이므로, 영산포등대가 ‘흰색’이라고 해서 ‘바다에서 항구 방향 기준 등대의 왼쪽이 위험하니 오른쪽으로 들어오라’는 의미가 적용되는 항로 표시인지는 명확치 않다.

20세기에 등장한 철근콘크리트 덕분에 튼튼한 등대로 탄생했다. 영산강 뱃길을 타는 선박을 안내하는 역할과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설치됐다. 무인 등대다. 제작 설치된 초기에는 사실 등대의 역할보다 강 수위 측정의 비중이 컸다. 현대에 들어서 관광의 의미가 커져 내륙·강변 등대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국내 유일무이한 시설물이니 수시로 점검하고 관리되고 있다. 나주시 관광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걸 봐도 영산포등대는 이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다. 당연히 폼나는 제복핏 ‘타워지기’도 없고, 가냘프고 낭만적인 ‘등대지기’도 없다. 하지만,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밤에는 외로운 듯, 담담한 듯 불 밝히고 서있다. 탐조등은 아니다. 큰 백열전구를 품고 있다.

7월 1일은 세계 등대의 날이다. 2018년 국제항로표지협회 세계등대총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등대의 가치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제정됐단다. 영산포등대에게도 7월 1일이면 생일 돌아오듯 축하파티라도 열릴지, 등대 불빛 따라 반딧불처럼 명멸하는 기념축포라도 터뜨릴지 기대된다. 3월말 벚꽃이 흐드러질 즈음이면, 등대 뚝길 끝지점에서는 벚꽃 버스킹이 열린다. 이때를 맞춰 방문하면 일석삼조 관광이 될 수 있다.

등대 코앞에서는 강바람이 서늘하게 얼굴을 스치는 황포돛배에 취할 수 있다. 근처 10m만 걸음하면 상큼한 ‘홍어탕’도 일품인 홍어거리와 만난다. 1박의 흥취가 홍탁3합처럼 정겨운 영산포등대 아래 공공주차장도, 공공화장실도 깨끗하고 정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