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루. 사진=홍각희

지난 6월 24일, 나주문화재단이 출범 후 처음으로 연 사업설명회는 단순한 행사 그 이상이었다. 나빌레라문화센터 소극장을 채운 사람들의 눈빛에는 나주의 문화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와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후 선발된 20명의 문화기획 인력은 나주의 정신과 정체성을 되새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중 한 프로그램, ‘서편제 판소리의 본고장, 나주’를 주제로 한 포럼은 단순한 학술 논의를 넘어,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이 포럼에 참여 중인 남평 출신 J 모 씨는 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평루’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에 따르면 남평루는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남평이라는 공간이 지닌 상징성과 자존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신적 기둥이다.

기자는 지난 6월 25일, J 씨와 함께 남평루가 있었던 자리를 찾았다. 월현대산 자락, 20여 년 전의 기억을 따라 오른 그곳에는 뜻을 함께한 동호인 20여 명이 2017년에 세운 소박한 정자가 서 있었다. 비록 옛 남평루의 위용을 되살리기엔 부족할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열정과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J 씨는 이 자리에서 “남평루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남평인의 자긍심이었다”며, 행정 당국이 이 공간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되살려 정식 복원에 나서주길 간절히 요청했다. 이는 단지 정자를 하나 다시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나주의 문화 정체성을 회복하고 시민의 자부심을 되찾는 일이라는 그의 말에 깊은 공감이 일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조선후기 대표 민요이자 판소리인 <호남가>의 가사 속에 ‘남평루’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여산석에다가 칼을 갈아 남평루에 꽂았으니, 대장부 할 일이야 더할 손가”라는 대목은 단지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 당시 남평이 호남인의 기개와 기상을 상징했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남평루는 단지 목조 건축물 하나로 남을 공간이 아니다. 남평루를 중심으로 지역의 서사와 정체성을 엮어내고, ‘호남가 판소리 대회’ 같은 전국 규모 문화행사를 유치한다면 이는 곧 남평과 나주의 문화 자긍심을 되살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나주문화재단의 출범이 이 같은 시민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한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정신의 뿌리다. ‘남평루’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보는 이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그 외침이 나주의 행정과 시민 사회를 움직이는 진동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