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아.보.하’라는 문구를 자주 봅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이지요. 처음엔 젊은 세대의 유행어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하루를 굳이 특별하게 여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 말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절실히 느낍니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망막 박리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습니다. 한쪽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지는 순간의 공포는 말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했지만, 그 후 몇 달간은 고개 하나 숙이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심한 운동 중 무릎 뒤쪽 반월판이 손상돼 몇 걸음조차 떼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이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할 도전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동네 산책길을 걸으며 계절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풍경들, 봄의 새싹,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까지 모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사계절의 변화가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가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아, 내가 이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있구나” 하는 감사함이 자꾸 밀려왔습니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위를 걸을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전 같으면 운동 성과나 시간만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두 다리가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 시간들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평범함의 소중함이었습니다. 건강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찾아와서야 비로소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 풍경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 손자가 뛰어오는 모습을 두 눈으로 선명히 볼 수 있는 것,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이 모든 평범한 일들이 사실은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젊을 때는 늘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 보니 정작 소중한 건 그런 특별함이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밥상을 마주하는 것, 동네 한 바퀴를 무사히 돌아오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지켜가야 할 진짜 행복이었습니다.
요즘도 길에서 ‘아.보.하’라는 글자를 볼 때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오늘도 아주 보통의 하루를 무사히 살아냈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충분히 행복합니다.
이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마음속으로 속삭입니다. “오늘도 아주 보통의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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